재치 넘치고 상상력 풍부한 작가의 화려한 데뷔작!
아이즐 그림책방의 네 번째 그림책은 데이비드 루카스의 데뷔작 <부끄럼 타는 아이 핼리벗 잭슨>입니다. 그동안 일레스트레이터로만 활동하던 데이비드 루카스는 이 작품을 통해 그림책 작가로 다시
태어났습니다. 데이비드 루카스는 자신이 쓰고 그린 첫 번째 그림책 <부끄럼 타는 아이 핼리벗 잭슨>으로 글과 그림이 서로의 영역을 넘보지 않으며 적절히 조화를 이루고 있다는 평가를 받으며 단번에 주목
받는 그림책 작가 대열에 올라섰습니다.
숨은그림찾기의 즐거움
<부끄럼 타는 아이 핼리벗 잭슨>은 표지부터 우리의 호기심을 자극합니다. 반짝이는 태양과 날고 있는 새들은 눈에 금방 들어오지만 주인공 핼리벗 잭슨의 모습은 눈에 띄지 않습니다. 태양에 몸을
숨기기 위해 노란색 옷을 입고 있기 때문입니다.
그렇습니다. 이 예사롭지 않은 우리들의 주인공 핼리벗 잭슨은 부끄럼을 타는 아이입니다. 그것도 심각한 부끄럼쟁이입니다. 그래서 핼리벗 잭슨에게는 공원에 산책 가는 옷이 따로 있습니다. 물론 상점에 갈 때
입는 옷이나, 서점에 가는 옷도 따로 있고 심지어 집안 소파에 앉아 있을 때 입는 옷도 따로 있을 지경이랍니다. 해도해도 너무한 왕 부끄럼쟁이 핼리벗은 어린 독자들에게 큰 즐거움을 선물합니다. 독자와 마주치기
싫어하는 주인공 핼리벗을 찾아내기 위해 아이들은 책장을 넘기면서 계속 숨바꼭질을 해야 하거든요. 사과 더미 속에 숨은 핼리벗, 책장 속에 숨은 핼리벗 등등 아이들이 좋아하는 숨은그림찾기의 묘미를 맘껏 즐길 수
있습니다.
수줍음 극복에 관한 매력적인 책
<부끄럼 타는 아이 핼리벗 잭슨>에는 숨은그림찾기의 즐거움만 있는 것은 아닙니다. 아이보리 톤의 종이에 자연스럽게 번지는 먹선과 이에 어우러지는 채색의 단아함은 독자에게 따뜻함과 편안함을
느끼게 해 줍니다. 뿐만 아니라 이 책은 핼리벗이라는 못말리는 부끄럼쟁이를 통해 수줍음 극복에 관한 매력적인 주제를 재치 넘치는 방식으로 그려냅니다. 남들 앞에 나서기를 꺼리고, 소극적이며 부끄럼을 타는 아이들은
우리 주변에 의외로 많습니다. 하지만 부끄럼이 많은 아이들은 가정이나 집단 내에서 문제를 일으키는 경우가 적기 때문에 부모나 교사들이 대수롭지 않게 생각하는 경우가 많습니다.
그렇다면 부끄럼은 진짜 대수롭지 않은 현상일까요? 정상적인 발달 과정에서의 부끄럼은 생후 5~6개월에 나타나기 시작한다고 합니다. 처음 나타나는 사회 불안 반응은 어린아이가 생후 6~20개월 사이에 낯선
사람을 보면 놀라고 우는 모습을 보이는 '낯가림(외인불안 stranger anxiety)'으로 나타나는데, 이 시기가 지나서도 지속적으로 수줍음과 위축을 보이면 문제가 생깁니다. 어렵게 생각되는 상황에 처하게 되면
대개 위축되고 그 상황을 피하려고 하기 때문에 학령 전기나 학령기 아이들의 경우 또래와의 활동에 참여하는데 힘이 듭니다. 이 시기 아이들의 경우 대부분의 사회적 경험을 또래 집단 내에서 경험하게 되는데 부끄럼이나
수줍음을 타는 현상이 지속되면 사회기술이 부족하여 낯선 사람을 만나거나 새로운 경험을 즐기는데 어려움을 겪습니다. 또한 교사나 또래로부터 칭찬이나 관심을 적게 받게 되어 자신감과 자존감을 형성하기 힘듭니다. 문제는
여기에서 그치지 않습니다. 부끄럼타는 아이들은 다른 사람에 대한 관심 표현이 적고 대화를 주고받지 못하며, 다른 사람에 대한 관심이나 배려도 나타내지 않습니다.
요약하자면, 안정감과 편안한 느낌을 가지지 못한 아이들은 낯선 사람을 만나고 새로운 일을 할 수 없으며, 자신감이 부족합니다. 당혹스런 감정을 피하려하고 자신에게만 몰두해 있기 때문에, 주변 상황에 대해
무관심하고, 이런 두려운 태도 때문에 사회적인 기술을 익히고 연습하지 못합니다. 부끄럼 때문에 사회성 연습을 하지 못하고, 다른 사람으로부터 긍정적인 피드백을 받지 못하는 것이 또다시 부끄럼을 강화시키기 되는
악순환이 반복됩니다. 지나친 부끄럼은 사회적 적응 능력을 떨어뜨리고 친구관계를 방해하며 아이의 자존심을 저하시킵니다. 어떤 연구에 따르면 극도의 부끄럼이나 수줍음은 성인이 되어 결혼 상대자를 만나고 관계를
유지하고, 좋은 직장을 찾고 일하는데도 문제를 일으킨다고 합니다.
약간 거창한 감이 없지는 않지만 우리 사회에서 부끄럼이나 수줍음은 너무 가볍게 취급되지 않았는지 이 책 <부끄럼 타는 아이 핼리벗 잭슨>으로 되돌아보고 싶었습니다. 여아들의 경우 얌전하다는
수식어로, 남아들의 경우 예의 바르다는 표현으로 치장되지는 않았는지요. 상황에 따라 일시적인 부끄럼을 타는 아이들은 많습니다. 하지만 현장에서의 실제 연구 보고에 의하면, 작게 잡아도 아이들의 약 15% 정도가
부끄럼을 탄다고 합니다. 학령기 아동의 30~40%가 자신이 부끄럼을 탄다고 느끼며, 청소년기에는 더 늘어나서 여중생의 60%, 남중생의 48% 정도가 스스로를 부끄럼을 탄다고 평가합니다. 미국의 경우 10대와
성인의 40%정도가 자신 스스로를 부끄럼을 타며, 그 수줍음 때문에 타인과의 만족스러운 관계를 맺기 어렵다고 보고하고 있습니다.
부모와 교사는 아이의 사회화 과정에서 만나는 초기의 대상으로, 아이로 하여금 부끄럼을 극복하는 방법을 가르쳐 줄 수 있는 좋은 위치에 있으므로 무조건 강요하지 말고 아이들 스스로 부끄럼 또는 수줍음을
극복할 수 있도록 잘 도와주기를 바랍니다. 그리고 그 과정에서 이 재미있고 유쾌한 그림책 <부끄럼 타는 아이 핼리벗 잭슨>이 도움이 되길 바랍니다. 이 책 <부끄럼 타는 아이 핼리벗 잭슨>은
한 권의 그림책으로서 어느 한 곳 빠지지 않는 즐거움을 가지고 있으면서도, 수줍어하고 부끄럼 많이 타는 아이들에게 자신감을 가지게 하고 자신에게 숨겨져 있는 재능을 발견해 나갈 수 있게 하는 아주 건강한 주제를
다루고 있으니까요.
"여러분도 부끄러워서 뒷전에 숨은 적이 있나요? 무엇이든 자기가 가장 잘하는 일로 친구를 돕고 친구들에게 필요한 사람이 되어 보세요."
-옮긴이 최재숙 (아동문학가, 유아교육학 박사)-